유럽성지순례 6일차 – 순례자들의 대성당, 산티아고와 부르고스

드디어 순례자들의 마지막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ostela Cathedral에 도착했습니다. 광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긴 순례를 마친 한 순례자가 강아지와 함께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강아지와 그 옆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순례자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길을 함께 걸어왔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대성당 앞에 서니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품어온 Praza do Obradoiro(석공노동자들의 광장)의 웅장함이 먼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광장을 지나며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손길에 감사드렸고, 이어 노동자 광장과 은세공사들의 거리 플라테리아스 광장을 바라보며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신앙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꼭 네 가지는 보고 오라는 가이드 형제님의 말을 기억하며 성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은세공업자들이 드나들던 플라테리아스 문에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다윗 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에게도 삶의 모든 순간을 찬미로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품어 주신 주님의 자비를 묵상하며 부족하고 연약한 저 자신도 다시 한번 하느님의 사랑 안에 맡겨 보았습니다.

드디어 야고보 사도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그토록 많은 순례자들이 꿈꾸던 그 자리에서 긴 여정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기도들을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무덤 앞에 모여 신부님과 함께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쳤습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순례자들의 기도가 쌓여 온 그 자리에서 우리의 작은 기도도 함께 봉헌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제단 뒤편으로 올라가 야고보 사도의 어깨를 감싸 안는 순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마음 한편이 따뜻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쳐 있던 야고보 사도를 위로해 주셨던 필라르(기둥) 성모님께서 계셨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을까?”

감사였을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기도였을까요. 아니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작은 희망이었을까요.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이번 순례는 결코 혼자의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은총을 나누었던 모든 분들이 있었기에 감동은 더욱 깊어 졌고 감사는 더욱 커졌습니다.

산티아고에서의 기쁨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우리나라 청년 세 명을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이들은 순례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었고,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함께 도착해 미사를 봉헌하려고 앉아 있었습니다.

순례길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그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한번 도전해 보세요. 누구나 걸을 수 있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온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더 자유로워진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밝은 눈빛과 따뜻한 미소를 바라보며 문득 천사를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티아고를 떠나 부르고스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이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차를 타고 성지를 순례하고 있지만, 창밖의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마음만은 그 길을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저 길 위에서 땀과 기도, 감사와 희망을 품고 한 걸음씩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품어봅니다.

순례의 방법은 다를지라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만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느껴 봅니다.

휴게소에서 함께한 점심시간.

변선아 베로니카 자매님께서 기꺼이 우리들에게 사준 와인 한 잔과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유난히 달고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맛보다 더 깊게 남은 것은 함께 나누어 주신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작은 배려가 큰 감사로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던 중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하나가 마치 두 손을 모으고 우리와 함께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순례의 길 위에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작은 선물이었을까요. 그 순간 하늘도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메세타 구간을 지나갔습니다.

메세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가장 힘든 길로서 인내를 요구하는 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 위를 걷다 보면 옆으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버스와 자동차들이 쉼 없이 달려갑니다.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가 눈 앞에 펼쳐지지만 순례자들은 자신의 걸음으로 묵묵히 길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메세타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든 길이 아니라, 편안함의 유혹을 이겨내며 자신과 마주하는 순례의 길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Burgos Cathedral(부르고스 대성전)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는 ‘순례자들의 대성당’.

프랑스 고딕 양식의 웅장함 속에는 26개의 경당이 자리하고 있었고, 수백 년의 신앙과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죽음 이후를 준비하며 봉헌한 경당들, 안나와 요아킴의 계보를 담은 경당, 필라르(기둥) 성모님, 그리고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 장군의 묘까지. 성당 곳곳을 걸으며 신앙과 인간의 삶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피지로 만든 그레고리오 성가집,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 온 성작과 성광, 사도들의 유해를 모신 유물관을 둘러보며 신앙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AI로 복원된 엘시드 장군의 모습은 자매님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맞아 그리스도 경당에서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님과 함께 봉헌한 미사는 더욱 특별했습니다.

미사 말미에 신부님께서 읽어 주신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던 자식의 뒤늦은 깨달음이 담긴 시 한 편에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고 코끝이 찡해져 왔습니다.

화려한 건축과 귀한 유물보다도 우리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감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녁 식사의 와인은 서영선 마르타 자매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감기몸살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도 약을 챙겨 주고 따뜻한 관심을 보내 준 자매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순례길에서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작은 사랑들이 모여 더욱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오늘 저녁 식사에는 마르타 자매님의 감사와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BB 호텔로 돌아와 하루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긴 순례 여정 속에서 받은 은총과 감사의 순간들을 마음에 담은 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편안한 휴식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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